수원 팔달구 행궁동 벽화마을, 금보여인숙 담장엔 커다란 황금물고기가 있다. 간판 글씨 ‘금보’와 물고기의 지느러미 그리고 꼬리 끝이 빨간색이다. 감각적이다. 여인숙 간판은 물고기의 등지느러미가 됐다. 기와도 물고기 몸의 일부로 표현됐다. 정감 있고 이국적인 이 그림은 브라질 작가 라켈 셈브리의 작품이다. 브라질 사람은 아마존강에 사는 물고기를 생명의 원천으로 여긴다.
쓰러져가는 행궁동에 그 생명을 끌어오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모두가 떠날 날 만을 기다렸던 이곳을 벽화마을로 변화시키고 예술가를 받아들여 젊은이들이 찾아오게 만든이가 있다.
경기남부뉴스는 9월 1일 행궁동에 위치한 ‘예술공간 봄’을 찾았다.
‘예술공간 봄’의 이윤숙 대표는 이곳은 시의 예산으로 한 번에 만들어진 벽화마을이 아니라고 말했다. 1997년 수원 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화성복원과 문화재 보호정책이 추진되었고 화성은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었다. 그러나 화성 안 주민은 언제든 떠날 생각뿐이었고 집은 점점 낙후되어 갔다.
‘예술공간 봄’ 뒷문을 열면 ‘대안공간 눈’이 나온다. 성신여자대학교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이윤숙 대표는 살림집을 대안공간으로 내놓았다. 이곳에서 행궁동을 역사, 문화, 예술이 살아있는 마을로 만들고자 고민하고 실천한다. 2005년부터 국내외 작가를 불러모았고 2009년까지 비영리 전시의 장을 제공했다. 250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수원 화성을 지키며 사는 성안 사람들에 대한 고민, 정조의 애민사상에서 시작된 ‘행궁동 벽화마을’
이윤숙 대표는 “성안에 사는 사람이 불행한데 화성이 아무리 아름다운들 그게 아름답게 보이겠나. 시선을 돌려보자 해서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 프로젝트 ‘행궁동 사람들’을 시작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기획서를 넣었다. 4년간 전시기획 했던 경력을 인정받아 첫해 2천 5백만 원 지원을 받았다. 인터넷을 통해 골목에 오래된 역사를 드러내면서 사람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예술 프로젝트를 공모했다. 국내 작가뿐 아니라 브라질, 호주, 독일, 일본 등 외국 작가도 많은 제안서를 보내왔다. 행궁동에 가장 어울릴 작가를 찾고, 예산을 쪼개며 드디어 ‘라켈 셈브리’라는 브라질 작가를 맞이했다. 그리고 탄생한 첫 작품이 금보여인숙의 빅골드피쉬다.”라고 말했다.
“보통 벽화는 다 회칠하는데 우리는 오랜 역사를 드러내는 게 주제였다. 자세히 보면 물고기 몸통 속에 그 오래된 이끼와 낙서를 다 포함하고 있다. 금보여인숙은 백 년 정도 된 한옥이다.”라는 관람 안내도 했다.
당시 작가의 스케치북이라 할 수 있는 담장은 선택했지만 금보여인숙 주인 아들은 강한게 반대했다. 동장, 통장, 작가, 이 대표가 집을 찾아가 설득했고 마침내 마음을 돌이킨 주인 아들은 교육적인 그림을 주문했다. 그 시작이 지금의 행궁동 벽화마을을 완성했다. 벽화는 단순히 그림이 아니라 골목을 깨끗이 만들어주었다. 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찾아왔고, 낡은 집을 지키는 어르신만 있던 골목에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이런 이야기는 이 대표에게 직접 들어야 알 수 있는 스토리다.
예술이 마을 일상과 함께하다 아픔을 지나 ‘예술공간 눈’으로 걷는 중…마을과 함께 ‘생태교통 10주년’ 준비 한창
다른 곳보다 어르신이 월등히 많은 이곳에 새로운 6개월짜리 문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경로당마다 어르신 4~5명씩 한팀으로 작가와 연결했다. 경로당이 7개였다. 매주 찾아가서 화투를 치고 비 오는 날은 빈대떡 재료, 밀가루를 들고 가서 전을 만들어 먹었다. 마작도 배우는 등 경로당 마다 특색이 있었다. 작가들은 한지를 준비해 어르신들과 여치 집을 만들고, 화투 좋아하는 분들과 판화 개념으로 툭툭 찍어서 그림을 만들었다. 북수동 경로당에선, 준비해간 고무신에 예쁘게 그림을 그려서 자신도 신고 손주들에게 선물도 했다. 어르신들이 그날만 기다렸다고 했다. 북수동, 행궁동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졌으리라 이 대표는 말했다.
아픔을 지나 ‘예술공간 눈’으로 걷는 중…마을과 함께 ‘생태교통 10주년’ 준비 한창
행궁동 벽화마을이 한창 알려지던 2016년에 행궁동 곳곳에 개발업자가 들어왔다. 여기저기 다세대 주택들이 들어섰고 이곳 행궁동 벽화골목에도 신축허가를 받은 개발업자가 빌라를 짓기 위해 라켈 셈브리의 벽화가 그려진 골목 안 단층집을 부쉈다. 화성사업소에서 부랴부랴 빌라촌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문화시설로 10집을 지정했다. 개발을 원하는 몇몇 집들이 문화시설 지정에 반대하며 담장 벽화를 붉은 페인트로 험하게 지웠다. 그때 라켈 셈브리가 브라질에서 자녀를 출산하다 사망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이윤숙 대표에게 큰 아픔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윤숙 대표는 2018년 벽화복원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했다. 국내 작가들 뿐 아니라 콜럼비아 호르헤 이달고 작가가 적극 벽화복원에 합류했다. 라켈 셈브리를 위해, 행궁동을 위해 한 달간 머물며 멋진 벽화를 그려 라켈 셈브리에게 헌정했다. 행궁동 주민들은 벽화복원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흉물스러운 붉은 칠로 훼손되었던 벽화를 3년 동안 복원했다. 행궁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마을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아픔은 있었지만 골목 안에는 마을 공방, 공유경제 공장, 협동조합이 들어와 활용하고 마을정원도 생겼다.
행궁동은 40년 이상 한 자리를 지킨 가게가 많다. 의상실, 통닭집, 불고깃집이 문화에 후원하고 문화의 거리를 함께 만들었다. SNS를 하지 않아도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래도 이런 내용을 알고 벽화마을을 감상하면 남다른 의미를 간직하지 않을까.
인터뷰를 하는 동안 수원 화성안 사람들의 고민과 걸음이 15년을 넘어서 이제 젊은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냈다는 생각을 했다. 행정보다 먼저 움직이는 주민이 사는 곳이다. 덧붙여 내년이면 한 달간 차 없는 거리로 문화를 재생하는 ‘생태교통’이 10주년을 맞이하기에 마을주민이 함께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윤숙 대표는 자치위원의 자리는 젊은 다음 세대를 위해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삶은 같다고 말한다. 조금 남는 시간은 조각가로서 활동 중이다. 한강 조각 프로젝트로 서울에서 전시, 여류 조각가로 명동에서 전시, 곧 가을엔 수원에서 실험 미술그룹으로 국제예술제에 작품 출품, 10월 1일~9일 설치 작업, 11월 인천 아시아 아트쇼 송도에서 전시가 계속될 예정이다.
문화와 예술이 삶의 일부분에 녹아 있고 담장이 곧 미술관인 행궁동.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연인과 가족, 외국인 누구에게나 추천하며 이곳에서 아름다운 문화를 만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