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MZ세대가 만난 사할린 영주귀국자 그리고 역사

글: 박서현  경기남부뉴스 특별기자단
      (단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재학)

[특별] MZ세대가 만난 사할린 영주귀국자 그리고 역사. 경기남부뉴스 특별기자단 5월 12일 인천 사할린경로당 방문. 오른쪽 박서현 대학생 기자
경기남부뉴스 특별기자단, 인천 사할린경로당을 찾다.

낯선 단어 ‘사할린’᛫᛫᛫고국을 잊지 않은 이들은 한국에서 두 번째 삶을 살고 있었다.

1938년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일제는 사할린섬 남부에 조선인 약 6만명을 강제로 징집했다. 사할린 동포들은 일제에 의해 사할린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시달렸고, 해방된 이후에는 러시아에 의해 그 삶은 여전했다. 일제에 의해 사할린으로 끌려간 이들과 그들의 후손인 사할린 동포들의 삶을 기록하고 재조명하고자 기자단이 뭉쳤다.

경기남부뉴스 특별기자단은 5월 12일 인천 사할린경로당 문정현 회장님을 찾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할린섬은

사할린 동포들이 끌려간 사할린은 북태평양 일본 위에 있는 러시아 소속 섬이다. 추운 기후에 속한다. 여름에는 몬순의 영향을 받아 약간 습윤하지만, 겨울에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권 안에 들기 때문에 몹시 춥다. 특히나 사할린 동포들이 거주했던 지역은 북쪽 지역으로 4계절 내내 극심한 추위를 견뎌야 했던 곳이다.

이곳에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 금속 수산물 임산물 등 풍부한 천연자원이 있다. 섬의 60%가 숲이기 때문에 목재 가공과 펄프 제조 등의 공업이 주된 사업이며 수산업도 활발하다. 때문에 강제 노역으로 끌려간 사할린 동포들은 주로 천연자원을 캐내거나 목제 관련 공업 혹은 수산업 분야에서 강제 노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학교생활

고국이 아닌 춥고 낯선 땅에서의 생활은 매우 험난했다. 부모님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낯선 땅 사할린에 끌려가 이곳에서 아들 문정현을 낳았다. 생소한 언어와 이질적인 문화로 인해 사할린 동포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고, 게다가 일본인도 러시아인도 아닌 조선인으로 무국적자로 살았다. 인종차별과 민족차별에 시달렸고, 반경 10km 내에서만 삶이 허락되었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문정현 회장님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여섯 살 때 사할린 내 일본학교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을 도맡던 우등생이었다. 그러나 한국인을 공식적으로 우등생이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 속에 특별한 호명은 없어도 공부에 열중했다. 일본학교에 입학한 탓에 한국어 공부를 하지 못했던 회장님은 종전 후 조선학교에 들어가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열 여섯 살, 학업을 중단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아버지가 일본으로 또다시 강제징용으로 끌려가는 일이 발생했다. 사할린에는 어머니와 가족들이 남았고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던 아들 문정현은 취직을 결심했다. 그때 어머니는 “아버지를 찾고 싶다면 공부를 이어가라”라는 뜻을 아들에게 알렸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해서 사범대학을 무사히 졸업했다.

아버지를 찾기 위한 노력

1956년 일본인들은 사할린에서 일본인들을 귀가 조처시키기 시작했다. 아들 문정현은 일본으로 떠나는 일본인들에게 당신의 주소가 적힌 쪽지를 전달하며 아버지와 연락하려 수소문했다 약 1년 후 회장님은 아버지의 주소를 알게 되었고 그로부터 15년 후에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장님은 국적을 취득해야 했고 당신은 러시아에서 3년 동안 군 복무를 하여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대부분의 한인 동포들이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반대했다 약. 95%의 동포들은 고국의 피가 섞인 북한 국적을 취득했다 그러나 훗날 북한국적자는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었다. 러시아 국적인 아들 문정현은 아버지와 가족이라는 것을 10년에 걸쳐 입증하여 꿈에 그리던 아버지와 재회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삶

[특별] MZ세대가 만난 사할린 영주귀국자 그리고 역사. 인천 사할린경로당 내부 모습. 경기남부뉴스 특별기자단 5월 12일
인천 사할린경로당 문정현 회장님은 부모님의 고향인 한국에 거주하고 싶은 마음과 민족차별 인종차별이 없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 한국에 돌아왔다고 한다. 한국인이지만 유년기는 일본어로, 청년기는 러시아어로 생활했기에 한국에서 생활하기란 쉽지 않았다 소통의 어려움이 물론 있었다. 회장님은 지금 한국에서 사할린 동포들의 적응을 돕고 있다. 경로당은 복지관 역할을 수행 중인데, 역방문과 영주귀국을 위한 서류를 작성하고 러시아에 가족을 두고 온 동포들의 외로움을 달래고 건강을 살피고 일이다.

일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문정현 회장님을 비롯한 사할린 동포들의 삶을 이제라도 국민은 관심을 갖고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할린섬의 소유권

사할린섬은 러시아와 일본이 영토권 분쟁을 일으킨 지역으로 소유권 역시 끊임없이 바뀌었다. 본래 청나라의 땅이었지만 17~18세기에 청나라의 관리가 소홀해진 틈을 타 일본과 러시아가 각각 남부와 북부를 중심으로 식민개척을 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1806년에 일본인 거주지를 습격하여 파괴한 후 사할린을 러시아령으로 선언했다. 이듬해인 1807년 일본의 에도 막부가 사할린을 일본령으로 선포하며 러시아와 본격적으로 신경전을 시작했다. 1855년에는 두 국가가 러일화친조약을 맺으며 사할린을 양국의 공동 관할구역으로 인정하였고 평화의 길로 들어서는 듯했다. 그러나 187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인해 사할린 전역이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이로 인해 사할린에서 살던 일본인들은 일본 본토로 대거 이주했고 사할린섬 전역에 러시아 식민자들이 대거 들어왔다. 그러나 이 상황은 1905년에 역전됐다. 러일전쟁 말미에 일본군은 사할린섬을 점령했고 전후에 체결된 포츠머스 강화조약에 의해 사할린 남부가 일본으로 재편입하게 되었다. 게다가 1925년까지 러시아가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일본이 사할린 전역을 지배했다 하지만 1945년 2차 세계 대전에 패망한 후 소련군 러시아의 기습 침략이 있었고 섬 전체가 다시 러시아 영토가 되었으며 현재까지 러시아가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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