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MZ세대, 사할린동포의 꿈 기록하며 ‘오랜 숙원’ 논의 절실

: 박나림 경기남부뉴스 특별기자단
      (안산대학교 간호학과 재학)

 

50년 이상 러시아 삶, 아직도 한국어는 서툴러
그녀의 꿈 이제 두 딸과 같이 한국에서 살고 싶다

이곳 고향마을 아파트는 90세 이상의 초고령 영주귀국자에 대한 걱정을 빼놓을 수 없다. 몸이 안 좋은 여러 어르신은 러시아에 있는 자녀들이 코로나19로 인하여 3년 이상 한국 방문이 막힌 것과 자녀의 영주귀국이 여의치 않음으로 홀로 임종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족과 마지막 여생을 보내고자 하는 영주귀국자의 마음고생이 오래됐다. 경기남부뉴스 특별기자단은 5월 19일 안산 고향마을아파트경로당을 찾아 사할린동포의 현주소를 되짚어봤다.

한국어를 배우는 중

안산 고향마을아파트 한글학교에서 한글수업을 진행중. 2023.5.19 경기남부뉴스

안산 고향마을아파트 내 복지관에서는 마침 한글학교에서 수업을 진행중이었다. 학생들은 사할린동포 어르신들이었다. 기자가 이곳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의사소통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대부분 어르신이 서로 러시아어로 소통을 하고 기자단과 대화할 때만 한국어를 사용했다. 그마저도 완전히 능숙하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상당히 놀라웠지만, 어르신들과 인터뷰를 나누다 보니 50년 이상의 세월을 러시아에 거주하였고 대부분 한국에 돌아온 지는 길어야 1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영주이주자들끼리 함께 거주하다 보니 서로 익숙하고 편한 말을 사용하게 되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경로당에 들어서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리고자 방을 찾아갔을 때 어르신들이 독특한 보드게임을 즐기고 있어 지금 하고 계신 게임이 어떤 것인지 물었다. 이름만 들어보았던 마작이었는데 여러 명이 모여 게임을 진행하는 모습이 마작을 처음 보는 사람도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활동은 게임이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교류의 시간이었다.

이후 경기남부뉴스 특별기자단은 사할린 영주귀국자 어르신들과 직접 인터뷰를 나누었다. 자식을 두고 온 어머니의 안타까움과 해결되지 않는 이산가족 문제를 정순덕님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사할린에 남은 두 딸

“자식을 두고 온 어머니의 안타까움과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공론화 되길 바란다”는 정순덕님. 2023.5.19 경기남부뉴스
주변 친구들과 게임(마작)을 즐기며 소통과 교류시간 보내

2010년, 60세의 나이에 한국으로 귀국한 정순덕님은 남편이 영주귀국 사할린 한인 1세대, 본인은 2세대라며 소개를 시작했다. 사할린에 50년대에 태어나셔서 60살에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그녀는 아직 사할린에 두 명의 딸이 있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자신은 영주귀국을 했지만, 자녀들은 러시아에서 오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큰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 사할린 특별법이 제정되었음에도 입국 당시에는 몇 년 지나면 가족들도 귀국할 수 있다고 하였으나 현재까지도 자녀들은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 영주귀국뿐 아니라 직항도 없어 3번의 비행기를 타야 하는 먼 하늘길 또한 한국방문이 쉽지 않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나마 자신은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주변의 안타까움을 더욱 토로했다.

2000년대 1세대 영주귀국이 이루어진 이후 2007년부터 2세대도 영주귀국이 이루어졌다. 21년도부터는 1세대의 자녀 1명만 추가 귀국이 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이산가족이 생겼다. 현실에 대해 답답함과 문제가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 아쉬움을 표했다. 국회의원에게도 질문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1938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이후 일제는 ‘국가 총동원령’을 시행했다. 일본인과 조선인을 가리지 않고 젊은 청년들을 징집했다. 특히 벌목장과 탄광 등이 많았던 사할린 지역에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던 일제는 사할린으로 가면 많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조선인을 꾀어냈다. 1, 2년 정도 일을 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한국으로 오는 길이 막혔다. 귀국할 수 없어 사할린에서의 삶을 이어갔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일본인에게 핍박받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러시아인에게 핍박을 받으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일본말도 모르고 러시아 말도 모르는 한인들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러시아 사할린에 강제 징용된 이후 8·15해방 이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계속 그곳에 머물다가 60, 7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고향 땅을 밟게 되었다.

정순덕님의 아버지도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되어 고국 땅을 떠나게 되었고 어머니도 함께 출국하며 사할린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아버지를 포함한 함께 징용되어 온 사람들 모두 탄광에서 일하게 되었다. 당시 일본 사람들은 탄광에서 일하지 않고 한국인에게만 고된 일을 시켰다는 아버지의 기억을 되살려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버지는 탄광에서 갇혀 며칠 동안 나오지 못한 적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강제징용 당한 한인 동포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다.

90년도부터 사회주의 시대가 끝나 사할린에서 자본국처럼 개인 사업이 가능해졌다. 그녀의 남편은 91년도에 고등학교, 93년도에 마침내 사할린에 대학교까지 설립했다. 2017년까지 남편이 운영하였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2021년까지 그녀의 딸이 업을 물려받아 대학을 운영하다가 설립자 부재로 인해 현재 대학교는 운영하지 못하고 딸이 다른 학교를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안산 고향마을아파트는 어떤 곳

안산 고향마을아파트경로당. 2023.5.19 경기남부뉴스
안산 고향마을아파트경로당 물리치료실료실을 이용하는 모습. 2023.5.19 경기남부뉴스

이곳 고향마을아파트에는 안산시 공무원들이 상주하며 영주귀국자들의 생활을 돕는 영주귀국동포지원사업소와 각종 설비를 갖추고 있다. 복지관, 강당 등 부대시설과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한글 학교 등이 있어 한국 생활 적응에 도움을 주는 환경이었다.

안산시에 있는 아파트 단지 고향마을의 시작은 1990년대 정부의 사할린동포 영주이주사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2월 이후 귀국한 사할린동포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해 경기도 안산시에 조성된 영구 임대 아파트이다. 현재는 472세대의 사할린 영주귀국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함께 모여서 게임을 하고 수다를 나누는 여유로운 모습 안에 남은 상처는 지워지지 않겠지만 지방자치단체와 국가가 최대한 힘을 모아 사할린동포들의 숙원을 이루는 방안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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