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국군전사자 유해 7위, 고국의 품으로
*6·25전쟁 당시 미군이 수습, 하와이 펀치볼묘지에 안장한 유해를 감식해 확인한 유해 3위
*‘87년~’12년 미군이 단독 발굴, 하와이 DPAA에 보관중인 유해를 감식해 확인한 유해 1위
*’95년·‘18년 북한이 미국으로 송환, DPAA에 보관중인 유해를 감식해 확인한 유해 2위 (故최임락 일병 유해는 1995년 북한이 미국으로 송환한 유해, 함경남도 장진에서 발굴)
*’96~‘05년 미군·북한군 공동 발굴, DPAA에 보관중인 유해를 감식해 확인한 유해 1위
대한민국은 7월 26일 밤 서울공항에서 윤석열 대통령 정부 출범 후 첫 6‧25전쟁 국군전사자 유해봉환식을 진행했다. 유해는 모두 7위이다.
국가는 호국영웅들을 공군 F-35A 호위, 국빈급 예포발사, 기상영접 등 최고의 군 예식으로 예우해 맞이했다. 봉환식은 국군전사자와 유가족 중심으로 마련됐다.
봉환된 7위의 유해 중 故최임락 일병의 신원은 한미 공동감식을 통해 시료를 채취한 유해 유전자 정보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 등록된 유가족 유전자 정보가 일치해 확인됐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나머지 6위의 유해는 앞으로 기록 분석과 정밀감식, DNA검사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해 나갈 예정이다.
확인된 故최임락 일병은 1931년 울산에서 태어나 1950년 8월 만 19세 육군에 자원입대했다. 이후 카투사로 미 7사단에 배치되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으며, 1950년 10월 함경남도 이원항에 상륙 후 이어진 장진호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1950.12.12.)했다. 형인 故 최상락 하사 또한 1949년 2월 육군에 입대해 국군 3사단 23연대에 배속되어 6‧25전쟁에 참전 중 영덕-포항전투(1950.8.1.~9.14.)에서 북한군 5사단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1950.8.14.)했다.
“호국영웅들께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
대통령은 유해봉환 행사에 앞서 故 최임락 일병 유가족을 만나 위로했고, 특별수송기 앞에 도열해 유해가 조국의 땅에 돌아옴에 군 예식에 따라 최고의 예우로 전사자들을 맞이했다.
오늘 봉환식에는 이종섭 국방부장관, 김승겸 합참의장, 박정환 육군참모총장, 이종호 해군참모총장, 정상화 공군참모총장,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등이, 미측에서는 필립 골드버그(Philip Goldberg) 주한 미대사, 폴 라캐머라(Paul J. LaCamera) 한미연합사령관 등이 참석했다. 대통령실에서는 조태용 국가안보실장, 임종득 국가안보실 2차장, 임기훈 국방비서관 등이 참석했다. 그리고 전사자 중 신원이 확인된 故 최임락 일병의 유가족 3명이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