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산은 부천시의 최고봉으로 217m이다. 근처엔 6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시장인 자유시장이 있다. 시흥의 북쪽 대야동과 인천광역시 장수동 사이의 위치한 소래산(해발 299m)은 시흥이 시로 승격되기 전 소래읍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산세가 완만하고 높지 않은 산이다. 소래란 지명은 지형이 소라처럼 생겼다는 설과 냇가에 숲이 많다 솔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그리고 지형이 좁다 즉 솔다에서 좁다 등의 이유로 비롯되었다고 한다.

12일(화) 부천에서 일을 보고 오후에 오랜만에 아버지 집에 왔다. 이제는 연세가 많이 드신 부모님을 뵈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젊었을 땐 패기도 있으시고 경찰공무원을 하실 때는 당당했던 아버지다. 그런데 지금은 당당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구부정한 어깨가 세월 속에 고생한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문득 아버지를 보면서 옛 기억이 떠올랐다. 오늘은 12·12사태가 있었던 역사적인 날이다.
11월 22일에 개봉한 ‘서울의 봄’ 영화가 생각나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어 보며 제9공수특전여단 옆 등산로를 따라 걸어 보았다. 어린 나의 기억(10세 국민학교 3학년)에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총살로 암살됐다는 소식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대성통곡하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해, 12월 12일에 국군 보안사령관 전두환을 주축으로 군조직 하나회(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무력으로 정권을 잡았고, 다음 해 광주사태가 80년 5월 18일 신군부에 의해 발생해 80년 9월 1일에 11대 전두환이 대통령이 됐다. 비상계엄령으로 여기저기서 전두환 물러가라 집회했고, 나는 최루탄 가스에 눈물, 콧물을 많이 흘리며 군사정부 세력의 감시와 통제가 심했던 시기를 보냈다. 그땐 최루탄 가스 맡는 것이 일상이었다.
한번은 행주대교를 버스 타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검문소에서 군 헌병 둘이 버스 안으로 들어와 신분확인 및 소지품 검사도 했다. 완전 쫄아 공포감이 엄습했었다.
고교 시절엔 교련(군사훈련)이 있어 검정 모자와 교련복에 겨드랑이 사이로 가방을 끼고 다녔다. 보이스카우트에 가입하여 학교 뒷산(거마산과 성주산)에 있는 제9공수특전여단에서 3박 4일 기간 훈련을 받기도 했다.
1986년 고1 때 뜨거웠던 어느 여름날, 보이스카우트(청소년의 인격 양성 및 사회봉사를 위한 국제적 교육, 훈련 단체 -현, 잼버리)를 통해 인천 거마산과 부천 성주산에 위치한 제9공수특전여단에서 특수낙하 11단계 훈련을 받았다. 막타워(11m높이)에서 뛰어내리기, 유격 훈련 등을 체험했다. 훈련을 받으며 M16 총도 만져 보고, 헬기와 군 전용 수송기를 탔던 기억이 군부대를 보며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삼청교육대에 갔다 온 느낌이 든다. 아버지는 경찰 출신으로 내가 군부대 견학을 하고 훈련 가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오늘 성주산과 소래산 등산을 하며 새록새록 옛 추억이 많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동생과 함께 등산하며 옛이야기를 나누나 보니 등산을 하는 내내 지루할 시간이 없었다. 두 개의 산을 어떻게 타고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내 속에 남아 있듯이 세월은 흘렀지만, 이곳에 있는 역사적인 현장을 보며 우리 시대의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산을 걷다보니 내 기억 속에 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되살려 주었다. 산은 오른다는 건 단순히 걷는 것만이 아닌 것 같다.
등산코스는 성주산 심곡공원-하오고개구름다리-성주산-소래산을 넘어 원점회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