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지의 교육산책 7회] 불편하게 키우기(feat. MZ세대)

▲안현지 교육부 인성교육선진교사 (강원도 교육청 ‘인성놀이문화연구회’ 회장이며 지역사회 교육지원 ‘하트톡’ 대표다)

예전에 부모님들 사이에서 혁신적인 육아 관점으로 오랫동안 큰 이슈가 되었던 말이 있다. 연세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가 주장한 <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이다. 그는 이 책에서 조기교육이 얼마나 아이를 망치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아이가 즐겁고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실천법을 제시했다. 필자도 그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학부모님들과의 상담에서 그 내용을 자주 이용했다. 평소에 우리 아이가 뒤처지지 않을까 근심했던 부모님들은 상담이 끝난 후에, 느려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가지고 편안하게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효과는 별로 오래가지 못했다. 현실에서 맞닥뜨려지는 옆집 엄마와의 이야기, 다른 아이의 잘하는 모습, 높아지는 부모의 원함과 기대치 등으로 느리게 키워야 한다는 말은 이상적인 이론으로만 남아있는 듯하다.

느리게 키우는 것이 현실에 부딪혀 잘되지 않는다는 MZ세대 부모들에게 필자는 대신 ‘불편하게 키우기’를 권유하고 싶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접하게 되어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라고 불리는 요즘의 알파세대 아이들은 완벽하게 편리해진 일상생활을 누린다. 조작 활동을 하기 전부터 화면을 넘기거나 버튼을 클릭하는 법을 먼저 체득하여, 아이들이 원하는 즐거움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부모의 입장에도 디지털 기기는 쉽고 효율적인 육아도구이다. 식당에서 아이 앞에 태블릿 PC만 놓아주면 분주한 돌봄활동 없이도 여유 있게 밥을 먹을 수 있다. 결과만 보면 현대의 이러한 편리함이 매우 좋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를 따져보면 오히려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그 부수적인 효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는데 몇 년 전, 후배 교사의 돌잔치에 초청되었을 때였다. 주인공 아이가 특이한 컵을 이용해서 편안하게 두유를 먹고 있었다. ‘와~ 이제는 이런 도구까지 나왔구나!’ 필자 눈에 들어 온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두유통이 쏙 들어가도록 만든 사각형 ‘두유컵’이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내가 아이를 키울 때를 떠올려 보았다. 처음으로 빨대와 두유통을 접한 아이들은 대부분 두유통을 꾹 잡다가 빨대 위로 두유를 쏟아내 버린다. 엄마들은 초기에는 아이들이 두유를 쏟아도 귀엽게 봐주며 닦아주고 다시 가르쳐 준다. 쏟고 닦는 일을 반복하다가 어떤 날은 아이가 일부러 두유를 꾹 눌러서 분수를 만들며 장난을 치고, 바닥에 흘린 두유를 발로 비비기도 한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드디어 엄마의 목소리는 엄한 목소리로 변하고, 분위기를 감지한 아이들은 결국 스스로 두유통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사고하게 된다. 모서리를 살살 잡으며 조심해서 행동하고, 어떤 날은 두유통이 접힌 곳을 날개처럼 펴서 그곳을 잡고 편안하게 먹는 창의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렇게 실패하고 장난치고 혼나는 과정에서 얻는 사고력과 적응력, 자제력은 어디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마음의 재산이다. 그런데, 아이가 겪을 불편함을 덜어주려고 내놓은 편리한 아이디어 상품이 오히려 아이의 성장 기회를 뺏어 버린 것은 아닌지… 그 장면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최근에 필자는 MZ세대 부모들을 자주 만난다. 요즘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고, 고심 끝에 외동아이를 낳기 때문에 그들은 가지고 있는 경제력, 정보력을 다 쏟아서 자녀들에게 최고의 환경을 마련해 주려고 노력한다. ‘골드키즈(gold kids)’, ‘금쪽이’라는 용어를 유행시킨 최근 광고트랜드를 봐도 알 수 있다. 자신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MZ세대의 성향이 자녀를 위한 소비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각종 아이디어 육아용품, 교육컨텐츠, 심지어 놀이까지도 부모를 대신해주는 AI 상품들이 고가로 날개 돋친 듯이 팔린다. 이뿐 아니라, 젊은 부모들은 심리적인 육아 방법에도 관심이 많고, 행동도 적극적이어서 질문과 이야기 소재가 많다. 교육자라는 입장에서 이런 현상은 정말 반갑고 고무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교육에 관한 관심과 적극성이 오히려 아이들의 성장 기회를 빼앗는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자녀들을 위해 쏟았던 열정과 노력이 오히려 마이너스의 효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다면, 아이에게 약간의 불편함과 결핍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다. 편안하고 안락한 상황 속에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사고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닥쳐오는 문제 앞에서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 없이 게을러지고 나태해질 수밖에 없다. 자녀를 위해 꽃길을 깔아 줄 충분한 정보력과 경제력을 갖고 있고, 그렇게 제공해주고 싶은 원함이 넘친다고 하더라도, 그때가 바로 부모의 자제력을 발휘할 때이다. 내 원함과 내 만족을 뒤로하고, 진정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따져보자.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나 아날로그 사회에서는 일부러 불편한 상황을 제공해 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알파세대 아이들이 자라나는 지금의 최첨단 사회에서는 일부러라도 불편함을 제공할 수 있는 지혜가 더욱 필요하다. MZ세대 부모들이 이점을 꼭 유념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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