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남부뉴스 김정옥 기자] [잠깐!] 예부터 강릉 경포대에는 '다섯 개의 달'이 뜬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하늘에 걸린 달 하나, 동해 바다에 일렁이는 달 하나, 거울 같은 경포호에 잠긴 달 하나, 그리고 마주 앉은 이의 술잔과 그 사람의 눈동자에 비친 달까지 다섯이다. 이처럼 경포대는 어둠 속에서도 찬란한 낭만을 찾아냈던 선조들의 풍류가 깃든 곳이다. 하지만 2026년 새해 아침, 우리가 그 다섯 개의 달이 머물던 자리에 다시 선 이유는 그 모든 달빛을 품고 솟아오를 단 하나의 '태양'을 보기 위함이다.
올해 경포대의 새벽은 유독 자비가 없었다. 살을 파고드는 매서운 바닷바람과 영하의 기온은 뼛속까지 시리게 했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많은 이들의 발길이 있었다. 차가운 공기를 뚫고 수평선 너머 솟아오를 ‘첫 일출’을 마주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추위를 넘어선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 소리는 새해를 알리는 거대한 북소리 같았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는 자신을 던져 길을 만들고 있었고, 그 힘찬 소리에 나의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있던 묵은 고민들을 파도에 실어 보냈다. 차가운 바다 위에 마침내 동해 수평선 너머로 붉은 여명이 올라오자, 해변에 찬 기운을 견디고 있던 사람들은 일순간 숨을 멈춘 듯 했다. 이내 어둠의 장막을 걷어내며 거대한 태양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광경은 '경이롭다'는 말조차 부족할 만큼 압도적인 장관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함성은 시린 시간을 견뎌낸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황홀한 기쁨이었다.
우리의 삶도 이 일출과 닮아있지 않을까? 때로는 다섯 개의 달을 띄울 만큼 낭만적인 순간도 있지만, 뼛속까지 시린 칼바람 같은 시련이 우리를 덮칠 때도 있다. 그러나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듯, 고통의 한복판은 곧 희망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경포대에서 본 일출은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사했다. 아무리 매서운 바람이 불어도, 아무리 거친 파도가 앞을 가로막아도 수평선을 뚫고 솟아오른 태양처럼, 우리 안에는 각자의 고난을 딛고 일어설 충분한 힘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새해라는 거대한 파도 위에 서 있는 지금, 우리는 다시 한번 마음의 끈을 조여 맨다. 경포대 해변을 가득 채웠던 그 뜨거운 함성을 기억하자. 이제는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새로운 태양의 빛으로 2026년 한 해 희망이 떠오르길. 태양은 이미 떴고, 이제 우리가 빛날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