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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건일의 걷다보니

[배건일의 걷다보니 89회] 백운산&쪽비산&매화마을 산행

 

경기남부뉴스 김정옥 기자] 백운산은 전라남도 광양과 구례 경계에 있는 높이 약 1,222m의 산으로 호남의 대표적인 명산이다. 울창한 숲과 다양한 계곡, 그리고 맑은 자연환경 덕분에 사계절 내내 등산객이 찾는다. 정상에서는 날씨가 맑을 경우 지리산 능선과 섬진강 일대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쫓비산은 광양과 하동 사이에 위치한 해발 약 536m의 산으로 섬진강을 내려다보는 조망이 아름답다. 특히 봄에는 산 아래 매화마을과 섬진강 풍경이 어우러져 사진 촬영 명소로 유명하다.

 

광양 매화마을은 섬진강을 따라 펼쳐진 매화 군락지로, 매년 봄이면 수십만 그루의 매화가 피어 장관을 이룬다. 이곳에서 열리는 광양매화축제는 국내 대표적인 봄꽃 축제 중 하나로, 매화와 함께 섬진강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새벽 3시 40분, 아직 밤의 기운이 짙게 남아 있는 시간.전남 광양의 진틀마을 버스정류장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등산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산악회 버스 세 대, 또 다른 산악회 버스 세 대에서 내린 사람들까지 더해지며 작은 마을은 잠시 거대한 산행의 출발점이 되었다.

 

헤드랜턴 불빛을 켜고 어둠을 가르며 발걸음을 옮긴다. 앞서 걷는 사람들의 불빛은 길게 이어진 개미 행렬처럼 산길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고요한 산속에는 거친 숨소리와 계곡의 맑은 물소리가 어우러져 묘한 리듬을 만든다. 그렇게 가파른 길을 따라 백운산정상 상봉을 향해 천천히 올라선다.

 

 

신선대 방향은 공사 예정으로 사고 위험 구간이라는 안내가 있어 그 길은 접어 두고 곧장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에 오르니 초승달이 은은한 빛으로 세상을 비추고 있다. 밝은 날이면 멀리 지리산능선까지 한눈에 들어온다지만, 이날은 산행을 너무 일찍 시작한 탓에 정상에서 일출을 보지는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매봉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급경사에 살얼음이 남아 있는 구간을 조심스럽게 내려간 뒤, 평탄한 길과 오르막이 번갈아 이어진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 멀리 커다란 봉우리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매봉이다.

 

 

매봉에 도착할 즈음 초승달은 오른쪽 하늘에서 조용히 작별 인사를 하듯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 대신 동쪽 하늘에서는 짙은 붉은 여명이 퍼지며 새로운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매봉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고, 나뭇가지 사이로 흐르는 섬진강풍경을 바라본다. 이제 다음 목적지인 쫓비산까지는 약 8km. 다시 길을 나선다.

 

매봉 갈림길부터는 돌들이 너덜너덜한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조심스럽게 내려가던 중 드디어 찬란한 일출을 맞이한다. 아침 햇살을 받은 섬진강 물결은 은빛으로 반짝이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 풍경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넋을 놓고 바라본다.

잠시 쉬는 사이 허벅지 근육이 묵직하게 아파오기 시작한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 뒤 다시 길을 재촉한다. 숲길이 길게 이어지자 어느 순간 지루함이 찾아오고, 체력도 조금씩 떨어진다. 길은 험한 곳은 몹시 거칠고, 편안한 곳은 걷기 좋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덧 갈미봉 아래에 도착했다.

 

눈앞에 펼쳐진 갈미봉의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가파른 경사와 높은 봉우리를 바라보는 순간 잠시 넋이 나갈 정도였다. 숨을 헐떡이며 한 걸음씩 올라서 마침내 정상에 닿는다. 갈미봉 역시 전망이 탁 트이진 않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이 다시 한 번 모습을 드러낸다.

 

갈미봉에서 쫓비산까지는 약 3km. 비교적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그동안 산길에서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는데, 쫓비산에 도착하니 몇몇 등산객들이 먼저 올라와 있었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아래로 펼쳐진 광양 매화마을과 섬진강 건너편 하동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이제 마지막 구간, 매화마을까지는 3km가 남았다. 하지만 이미 체력이 많이 소모된 상태라 급경사를 내려가는 길이 쉽지 않다. 반대로 올라오는 등산객들의 얼굴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고 거친 숨소리가 이어진다. 서로 힘내라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길을 지나친다.

마침내 매화마을에 도착하니 한창 광양매화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매화와 홍매화, 산수유와 생강나무를 감상하며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등산객이었던 나 역시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 한동안 매화 풍경에 빠져든다.

 

주차장에 도착해 산악회 버스를 찾는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며 긴 산행으로 쌓인 피로를 풀어 본다.

22.7km, 7시간 17분의 긴 여정.어둠 속에서 시작해 봄꽃이 만개한 마을에서 끝난 하루였다. 산과 강, 그리고 봄이 어우러진 길 위에서 또 하나의 깊은 기억이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