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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건일의 걷다보니

[배건일의 걷다보니 123회]붉은 여명과 운무, 그리고 병풍바위의 위용… 운악산 환종주

 

[경기남부뉴스 김정옥 기자] 경기도 포천과 가평의 경계를 이루는 운악산(雲岳山)은 해발 935.5m의 서봉과 937.5m의 동봉을 품은 경기 5악 가운데 하나다. 이름 그대로 구름을 뚫고 솟은 듯한 기암괴석과 험준한 암릉이 산 곳곳에 펼쳐져 있으며, 병풍바위와 눈썹바위, 만경대 등 빼어난 암봉과 계곡이 어우러져 사계절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특히 9월 7일 개장한 하늘길은 운악산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며 산행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19일 토요일 새벽 2시 48분. 내비게이션에 ‘포천 운악산광장주차장’을 입력하고 어둠 속을 달렸다. 아직 도시의 불빛도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다. 새벽 4시, 주차장에 도착하니 먼저 산행을 준비하던 젊은 등산객 5명이 서둘러 출발하고 있었다.

나 역시 간단히 산행 채비를 마친 뒤 운악산 제2코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연휴양림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됐다.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 헤드랜턴에 의지한 채 한 걸음씩 고도를 높였다. 산을 오르다 문득 2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하루에 세 개의 산을 오르는 ‘1일 3산’에 도전했다. 첫 번째는 가평 화악산, 두 번째는 포천 백운산, 그리고 세 번째가 바로 운악산이었다. 하루 종일 이어진 산행에 몸은 지칠 대로 지쳤지만, 그날 마지막으로 올랐던 운악산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새벽 산행이라 주변 풍광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은 운악산의 험준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했다. 서두르지 않고 호흡을 조절하며 천천히 걸었다. 어느 순간 두꺼비바위에 닿았다. 그리고 만경대에 올라서자 동쪽 하늘이 서서히 붉어지기 시작했다.

 

밤이 물러가고 아침이 찾아오는 순간이었다. 포천 운악산 서봉 정상에 도착했다. 해발 935.5m. 정상석 뒤편으로 붉게 물든 여명이 힘차게 번지고 있었고, 최근 개장한 운악산 하늘길도 시야에 들어왔다. 힘들게 올라온 산객에게 정상에서 마주한 풍경은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이었다. 오전 6시 15분. 일출을 기다렸다.

 

그런데 산 주변으로 운무가 가득했다. 해는 이미 떠오르기 시작했지만 짙은 운무에 가려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30여 분을 더 기다렸다. 마침내 운무 사이로 밝고 힘찬 아침 햇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림 끝에 만난 햇살은 더욱 반가웠다.

 

 

햇살을 받으며 다음 목적지인 가평 방향의 운악산 동봉으로 이동했다. 동봉 정상 해발 937.5m. 정상에서 인증을 마친 뒤 다시 제2코스로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가파르고 험했다. 바위와 급경사 구간이 이어져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출렁다리를 지나는데 위쪽에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갈림길에 이르러 이번에는 제1코스로 방향을 틀었다. 출렁다리를 건너고 다시 고도를 높였다.

 

눈썹바위를 지나면서부터 또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졌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깊은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역시 운악산이구나.’ 힘겹게 한 걸음씩 오르며 다시 산을 올랐다. 드디어 병풍바위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눈앞에 펼쳐진 병풍바위는 말 그대로 거대한 병풍을 세워 놓은 듯했다. 누군가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것처럼 수직으로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자연이 오랜 세월 빚어낸 작품 앞에서 인간의 말은 오히려 짧아졌다.

다시 만경대(가평)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햇살은 점점 뜨거워졌다. 얼굴은 햇볕에 붉게 달아올랐고, 산행객에게는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동봉에 다시 올라 그늘을 찾아 잠시 숨을 고른 뒤 서봉으로 향했다.

 

 

사람으로 가득 찬 하늘길

서봉으로 돌아오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새벽에는 고요하기만 했던 정상 주변이 어느새 수많은 등산객으로 북적였다. 잠시 머물 틈도 없이 하늘길로 이동했다. 하지만 하늘길 역시 많은 인파로 붐볐다. 좁은 길에 등산객들이 몰리면서 제대로 걷지 못하고 한 걸음씩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래도 최근 새롭게 문을 연 운악산 하늘길을 직접 걸어본다는 기대감은 컸다. 산세와 암벽이 만들어낸 운악산의 독특한 풍경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길이었다. 하늘길을 걸은 뒤 다시 돌아와 제1코스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운악산은 아름답지만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었다. 곳곳에 급경사와 암릉이 이어졌고, 발을 잘못 디디면 위험할 수 있는 구간도 적지 않았다. 하산길에서 한 젊은 청년이 다리가 후들거린다며 제대로 걷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틱과 함께 간단한 도움을 건네며 말했다.

“조금 쉬었다가 천천히 내려가세요.”

산에서는 정상에 오르는 것만큼 안전하게 내려오는 것도 중요하다. 다시 하산길을 이어가는데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좁은 등산로 곳곳에서 사람들이 서로 길을 양보하며 지나가야 할 정도로 정체가 빚어졌다. 새벽의 적막 속에서 시작했던 산행이 어느새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운악산의 낮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침내 긴 환종주 산행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새벽 2시 48분에 길을 나서 어둠 속에서 산을 올랐고, 붉은 여명과 운무 사이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만났다. 서봉과 동봉을 오가고, 병풍바위와 눈썹바위를 지나 하늘길까지 걸었다. 힘든 산행이었다. 하지만 힘들었던 만큼 뿌듯함도 컸다.

 

 

경기 5악의 으뜸으로 손꼽히는 운악산의 험준함과 웅장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운악산의 주요 능선과 코스를 두루 걸으며 산 전체를 직접 마주했다는 것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큰 의미로 남았다. 주차장에 도착해 산행 장비를 정리했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 포천을 뒤로하고 수원으로 향했다.

 

산은 오르내린 발자국보다, 그 길에서 마주한 순간을 사람의 가슴에 새긴다. 오늘 걸은 운악산의 길은 끝났지만, 붉은 여명과 거친 바위가 남긴 울림은 오래도록 내 안에서 걷고 있을 것이다.

 

■등산코스 : 운악산광장주차장-매표소-자연휴양림-소꼬리폭포-면경대-사부자바위-두꺼비바위-만경대-서봉-동봉-남근석전망대-절고개-무우바위-백년폭포-갈림길-출렁다리-눈썹바위-병풍바위-만경대-동봉-서봉-애기봉-하늘길-운악산광장주차장

■등산거리 : 16.7km / 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