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석도예, 명장 선정이어 2025년 한국과 유럽 초대전 계획 중

가마로 빚는 아름다움, 그리움 그리고 사람

도예가 일석(一石) 정선영 선생은 47년을 오직 도예가로 살아온 경기도 화성시 공예명장(도자분야)이다. 선생은 한국 전통 도자기를 세계 무대에 알리는 데 앞장서며 오늘도 창작에 매진하고 있다. 한국 인사동 초대전을 비롯 프랑스만 해도 초대전 2회, 전시회 2회를 진행했다. 낭뜨 TrES 갤러리 초대전(2014), 파리 샹제리제 싸롱드오뜨메 전시회(2014), 파리 갤러리 케니 초대전(2016), 파리 그랑팔레 국립 갤러리 앙데팡당 전시회(2017)로 전 유럽에서 모인 갤러리들을 매료시켰다.

잠시 후 한국과 유럽에서 또다시 초대전을 계획 중인 정선영 선생을 5일 경기남부뉴스가 찾았다. 한국의 얼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현장은 뜻깊었다.

일석(一石) 정선영 명장
백자 청자 분청사기 그리고 나만의 특별한 도자탄생기

12세기 도자 작업 방식과 양식은 1,300도 열에서 도기를 구워냈다. 익히는데 열흘, 식히는데 열흘이 지나면 도공은 흙집을 부수고 그 속에서 도자를 꺼낸다. 그리고 예리한 눈과 손으로 막사발 그리고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대작을 거른다. 흙을 고르는 것에서 시작해 48가지에 해당하는 과정을 또다시 거치며 원하는 작품이 나올 때까지 도공은 쉼이 없다.

지금 일석도예연구소는 정선영 선생의 흙, 물레, 안료, 가마 그리고 도자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정선영 선생은 “도예가는 모든 공정을 알아야 제대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정 선생은 17세부터 도자기 만드는 흙을 밟았고 전국을 다니며 가마를 배웠다. 도자기는 협력의 작업이다. 가마 불 때는 사람, 조각하는 사람 등. 정 선생은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다 배우고 싶었다고 한다. 가마 뒷일도 해주고, 물레기술, 조각, 유약 계속 배워갔다. 당시 유행한 백자, 청자, 분청사기를 배우며 ‘나만의 특별한 도자기’를 만들 꿈을 마음에 품었다. 기존 것을 따라 하는 것을 재현이라 하는데, 기본을 바탕으로 창작이 시작됐다. 창작은 실험을 통해 얻어지기 때문에 파손율도 상당하고 유약하나 개발에도 10년이 거뜬히 넘는다. 그렇게 자신의 작업에 알맞은 흙, 전통의 유약을 계승하며 발전시켜온 것이다.

그는 도자기를 만드는 숙련기술 보유자로 등록도예가 인증서, 예술활동증명 확인서, 화성시 공예명장(도자분야) 선정의 기록이 있다.

정선영 선생의 창작 활동은 멈춤이 없다. 개인전 10회, 그룹전 6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으며 한국문화예술제, 동양미술대전, 한일미술교류전 그리고 프랑스 초대전을 수차례 진행해 한국의 유산 도예를 유럽과 전 세계에 알려왔다.

세계적인 미술시장 프랑스 파리의 초대전 및 전시회 4아름답다!” 극찬
일석도예연구소 전시실 풍경

2013년 어느 날 머리 검은 프랑스인이 찾아왔다. 갤러리 관장이 한국 작가를 초대해 같이 프랑스로 간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 제의가 정 선생에게 온 것이다. 관장은 선생의 작품을 살펴본 후 “자신의 갤러리에 잘 어울릴 것 같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작품”이라며 초대전을 열기로 한다.

한국의 도자가 해외로 나가는 데는 반드시 문화재청에 등록해야 한다. 한 점 한 점을 등록하고 사진 찍고 밀봉해 실어 냈다. 국보를 보호하고자 하는 국내 규정이다.

프랑스 전시문화는 정말 놀라웠다. 전 유럽의 고객 한 사람마다 직접 메일을 써서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며 오픈 일 날 초대를 했다. 관심 있는 컬렉터들이 모여들었고 작품을 감상하고 구매로 이어지는 문화였다. 어떤 참석자들은 한국말을 배워와 “아름답다!”라고 하는데 정 선생은 당시 너무도 기쁘고 벅찼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날을 시작으로 프랑스에서 총 4회의 초대전 및 전시회가 개최됐고 현재 선생의 작품 100여 점이 다음 프랑스 전시를 기다리고 있다.

도예 계승의 난관 그리고 중요성
다음 공정을 기다리는 정선영 선생의 작품들
가마에서 나온 도기들

완성품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다양한 주전자, 접시, 사발, 병 정선영 선생의 작업실과 전시실에는 아름다우며 실용성이 느껴지는 도자기가 진열돼있었다.

그런데 이 예술계통은 수입이 많지 않고 일정하게 돈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경제적인 어려움이 크다. 그래서 분야를 중단하는 사람도 상당하고 후대로의 계승도 난관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는 와중에도 정 선생은 47년 도예의 한길 인생을 살았다고 말한다.

“저는 워낙 확고했다. 젊어서부터 도예가 좋았고 지금껏 그 마음으로 살고 있다.”

프랑스의 문학가이자 시인, 문화비평가인 필립 지껠이 2013년 12월 정선영 선생 작품에 대해 이렇게 평을 했다.

“정선영의 작품은 2천년(한국의 도사 역사) 이상 걸쳐온 연구와 시행착오, 창조적 섬광을 드러내고 있다. 손가락 사이로 패인 공간으로부터 찬란한 유산을 보존해 오면서 도기를 만들어 왔던 모든 예술가들의 계승처럼, 정선영은 자신의 나라에서 도자기의 역사의 끝에 서 있다”

 

화성시 공예명장(도자분야)인 정선영 선셍. 12월 5일 경기남부뉴스 촬영

경기도 화성시 일석도예연구소는 해외입양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우에게 한국의 흙을 만지며 도자를 만드는 재능기부를 수년간 진행해왔다. 같이 삼겹살도 구워먹었다. 그들이 어른이 되어 자녀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석(一石) 선생을 찾았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선생과 도자가 채워준 것이다.

부부가 함께 도예가로 인생을 꾸려나가는 모습이 당당하고 아름다웠다. 작품활동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도예반 운영도 가능하니 연락해 보는 것도 좋겠다.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부부였다.

일석(一石) 정선영 선생의 다음 행보에 경기뉴스도 함께 응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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