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사할린동포의 꿈을 찾아서…‘이산가족’ 안산 고향마을 편

안산 고향마을아파트 내 조각상. 경기남부뉴스 2023.5.19

지난 19일 경기남부뉴스 특별취재단은 안산시 사동에 위치한 ‘고향마을아파트경로당’을 방문했다. 이는 사할린동포의 한국에서의 삶을 알아보기 위한 특별취재로 인천 사할린경로당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다.

안산 고향마을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60세 정도로 보이는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경로당 안에는 삼삼오오 어르신들이 모여앉아 놀이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동행한 대학생 기자도 처음 보는 광경에 신기해했고 어르신들 옆에 앉아 여행사진도 보며 귀 기울여 이야기를 들었다. 또 옆 건물인 복지관에는 한국어를 몰라 불편한 어르신을 위해 한글학교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안산 고향마을아파트경로당 주훈춘 회장. 경기남부뉴스

사전 연락했던 주훈춘 회장은 기자단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고 당일 경로당 전체를 돌아봐야 하는 일로 강 알렉산드로 부회장이 대신해서 안내를 해주었다.

그중 몇몇 어르신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조용한 로비와 야외쉼터로 자리를 옮겨 편안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래 내용은 4인의 대담 형식으로 재구성됐다.

Q. 안녕하세요 부회장님, 안산 고향마을은 어떤 곳인가요?

강 알렉산드로(고향마을아파트경로당 부회장): 안녕하세요. 사할린동포의 한국 방문은 1989년 한국과 일본의 적십자가 ‘사할린 거주 한국인 재회지원 공동사업’을 진행해 일시방문 및 영주귀국사업을 하며 시작됐어요.

안산은 1990년대 ‘안산 고향마을 아파트’ 단지를 LH가 건립했고 한인전용입니다. 현재 이곳에는 472세대의 가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공실은 17세대입니다.

Q.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세분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정순덕씨

정순덕(74.여): 나는 1950년도에 사할린에서 태어났고 한국에는 2010년 60세 되던 해에 남편이 1세대라 남편 따라오게 입국했습니다. 처음 한국에 들어올 때는 몇 년 살면 자녀들도 들어올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자녀들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해 이산가족으로 살고 있어요. 그 아쉬움을 영상통화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김순금씨

김순금(88세.여): 나는 2000년에 한국에 왔어요. 함께 온 남편은 아프셔서 돌아가셨습니다. 딸은 둘과 아들 한 명이 있었는데 둘도 먼저 세상을 떠났고 딸 하나만 사할린에 남아 있었어요. 2022년부터 한 가정에 한 자녀가 영주귀국을 신청할 수가 있어서 드디어 딸이 입국해 같이 삽니다. 내 어머니는 98년도에 귀국하셔서 인천에 살고 계시다가 내가 한국에 들어온 이후 안산으로 모시고 와 우리 셋이 같이 살고 있습니다.

박공길씨

박공길(남.80세): 나는 2008년도에 아내와 같이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어머님이 올해 102세가 되셨는데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러시아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며 영주귀국을 준비하고 있는데, 내년쯤 신청해 한국에 올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Q. 사할린에서 어떻게 사셨습니까

정순덕(74.여): 한국에 오기 전에 사할린에서 공부도 하고 사업을 했어요. 러시아 사회주의 속에서 90년도까지 살았는데, 고르바초프 이후 정권이 바뀐 후 자본주의처럼 자기사업도 할 수 있었어요. 당시 91, 92년도엔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공장문들이 다 닫혔고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교수였기에 고등학교를 열 수 있는 여건이 돼서 학교를 운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라에서 고등학교를 닫으라 해서 닫았지요. 이후 대학을 설립도 했고 2017년 남편이 돌아가시고 지금은 딸이 다른 학교를 세워서 학교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박공길(남.80세): 저는 소련 연방공화국 때 카자흐스탄 대사관에서 13년 근무를 했습니다. 20살 때부터 자동차 운수, 트럭, 버스 운전을 하다가 나중에는 대사관에서 문서 일을 했습니다. 사할린에서 고생은 좀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저는 괜찮은 편이지요.

안산 고향마을아파트 내 복지관, 한국어를 몰라 불편한 어르신을 위해 한글학교 수업을 진행중이다. 경기남부뉴스 2023.5.19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모여 놀이를 통해 교류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Q. 예 감사합니다. 지금 사할린동포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입니까

정순덕(74.여): 이산가족 문제가 시급합니다. 한국에 와서 보니 한국은 일손도 부족해 다른 동남아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는데 사할린동포들은 기술자들도 많고 배운 사람도 많아서 이곳에 들어와 일자리도 해결하고 한국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산가족의 문제를 정부가 하루속히 법을 개정해 저희의 아픔을 해결해 주길 고대합니다.  저희 부모님들은 2000년에 한국에 나왔고, 저희는 2007년, 2020년에 1세대와 자녀 1명씩만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자꾸 이렇게 이산가족이 생깁니다.

이곳 안산 고향마을에는 90세가 된 어른들이 많이 계세요. 병원도 자주 가셔야 하는데 혼자라서 외롭게 마음고생 하며 쓸쓸한 여생을 보내는 분도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여유가 좀 있어서 딸 둘이 한국을 가끔 방문해 볼 수 있지만, 다른 분들은 비행기 삯도 비싸서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어 어르신들이 자식들을 보고 돌아가셨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김순금(88세.여): 여기에 들어온 2세대들은 대체로 언어와 글이 안 되니까 한국에 와서도 힘들어합니다. 러시아에 남은 2세 자녀들은 국제결혼 (러시아인과 결혼)도 많이 해서 대부분 한국에 들어오는 것에 생각이 별로 없어 합니다. 아쉬운 것은 한국에 들어온 자녀들이 취직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요. 영주귀국자는 법으로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어서 소득이 발생하면 안 됩니다. 이런 문제들을 정부와 시가 신경을 써 주셔서 우리 자녀들이 시간을 좀 더 잘 보냈으면 합니다.

박공길(남.80세): 이곳 한국 와서 살아보니 참 좋고 감사합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허리가 안 좋아 여러 번 수술했는데, 저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루빨리 자녀들도 영주귀국을 신청해서 한국에 와서 같이 살 수 있도록 이산가족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Q. 예, 시간이 걸리더라고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군요. 끝으로 한국에서의 꿈이 있으신가요

정순덕(74.여): 이곳은 정부에서 임대료로 지원해주고 생활비도 지원해줘서 사람들도 좋고 살기가 좋습니다. 예전 사할린에서는 세계한인여성회라고 10년 넘게 활동을 하며 전 세계를 다녔습니다. 처음 여기에 와서 사업도 하고 싶었는데 안된다고 해서 못했습니다. 꿈이라면, 건강하게 시간 보내고 우리 자녀들이 한국에 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입니다.

김순금(88세.여): 지금 우리에게 대한적십자사에서 물품, 생계비, 집을 제공해 주어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무척 고맙고 감사합니다. 자녀들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소망입니다.

박공길(남.80세): 한국은 모든 면에서 살기도 좋고 생활하는 데는 불편이 없지만, 가족들이 없어 외롭습니다, 여기에 계신 모든 어르신의 바람과 같이 나도 손주를 보면서 가족과 같이 여생을 보내는 것이 마지막 꿈입니다.

[특집] 사할린동포의 꿈을 찾아서…‘이산가족’ 안산 고향마을 편. 경기남부뉴스
조국, 내 고향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다간 사할린동포들이다. 어렵게 한국 땅을 밟고도 또 한 번 이산가족의 삶을 살아야 하는 동포들의 마음은 사할린의 겨울보다 차갑고 시렸다.

안산 고향마을아파트는 서로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으며 살아가는 곳이었다. 그들 모두가 소원하는 이산가족의 문제가 공론화되어 당정이 머리를 맞대고 국민이 나선다면, 지혜로운 한국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분명 해결점을 찾을 것이다. 따뜻한 봄이 한창이듯 가족이 함께 모여 오순도순 사는 꿈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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