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100원만!”
8살 코흘리개였던 하루 나의 용돈은 100원.
오후반 수업이 끝나고 국민학교 교문을 나오면, 학교 앞 줄 지어선 7개의 문방구로 달려갔다. 그 시절 문방구는 우리에겐 종합 복합 엔터테인먼트 스타필드였다. 종이인형, 구슬, 뽑기, 그리고 동네 최고의 ‘전문가’ 달고나 아저씨가 있었다.
하얀 설탕을 국자에 올리고 나무젓가락 끝에 소다를 찍어 두 번 휘휘 저으면, 설탕이 마법처럼 부풀어 올랐다. 고도의 집중 속에서도 별 끝이 ‘톡’ 떨어져 나간 순간, 부풀던 내 마음도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문방구의 양대산맥 뽑기.
여러 번 꽝의 패배 끝에 5등이라도 당첨되면 작은 나비모양의 설탕사탕을 먹을 수 있었다.
하늘이 도운 것일까? 대왕 잉어 모양이 나올땐 그날은 말 그대로 대박!
얇지만 큼직하고, 색깔은 주황빛과 노란빛을 섞은 투명한 광택. 잉어 비늘이 눌린 무늬 그대로 살아 있고 손에 들면 햇빛이 비쳐 반짝였다. 금방이라도 헤엄칠 거 같은 왕 잉어.
그걸 손에 쥐는 순간, 나는 그날의 왕!
명품백을 메듯 100원으로 초호화 득템을 하는 순간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의 눈빛이 쏟아지고, 나는 잉어 꼬리부터 천천히 아껴 먹으면서 집까지 쭉 으스대며 걸어갔다. 왕 잉어 한 마리면 사흘치 간식 해결
100원, 현재는 희귀템
엽전처럼 박물관에나 들어가야 할 거 같다. 현금이 사라지고 숫자가 화면 속으로 들어가면서, 동전 하나가 품던 설렘도 함께 사라진 것 같다.
그 시절의 욕구는 단순했다.
단돈 100원, 달고나 한 판, 설탕 잉어 한 마리
절제는 기다림이었고, 기다림은 설렘이었다.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일은 고통이 아니라 내일을 달콤하게 만드는 의식이었다.
지금은 욕구가 절제를 넘어버린 시대
1분 shot로 세상을 보고, 클릭 한 번으로 다음 날 물건을 받아볼 수 있다.
그런데 더 허전하고 서글프다. 욕구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질주한다. 이제 절제는 누군가가 억눌러줘야 하는 기술이 되어버렸다.
가끔은 기억넘어 8살 그 때를 떠올려본다.
“아빠, 100원만.”
잉어 사탕 하나에도 가슴이 뛰던 날,
부풀던 설탕처럼 마음까지 부풀던 설렘,
그 시절의 꼬꼬마였던 나인지도 모른다.
이제 100원의 시대는 사라졌지만,
그 100원이 남긴 기억의 단맛은 여전히 나를 가슴 뛰고 살아있게 한다.

















